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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판도 바꾸는 AI… 10조 시장 열린다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6.03.05
조회수233
신약 개발 과정은 흔히 ‘죽음의 계곡’으로 불린다. 평균 10~15년이 걸리고 조 단위의 천문학적 비용이 들지만, 지난한 임상 단계를 거쳐 최종 판매승인까지 통과할 확률이 수천 분의 1에 불과해서다. 거대 글로벌 제약사가 아니면 감당하기 힘든 고위험 구조인 셈이다.
그런데 다른 첨단 산업들처럼 제약 업계에도 인공지능(AI) 열풍이 불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개발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비용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길이 보이기 시작해서다.
한국화학연구원(KRICT)에 따르면 AI 신약 개발 시장은 2024년 약 18억 달러(2조5천억 원)에서 2029년 약 68억 달러 규모(9조6천억 원)로 네배 가까이 커질 전망이다.
대웅제약 연구원이 AI ‘데이지’로 신약 후보물질을 탐색하는 모습. 대웅제약 제공
약물 표적 선정부터 임상까지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신약 개발에서 AI 활용은 약물 표적 선정, 의약품 디자인, 환자군 최적화, 임상 모델링, 데이터 처리 등 5단계로 나뉜다.
우선 약물 표적 선정 때 AI는 유전자 데이터, 단백질 상호작용 등을 분석해 특정 질병과 관련된 후보물질들을 단시간에 찾아낸다. 의약품 디자인 과정에서는 화합물의 특성과 생물학적 활성을 예측해 후보물질 수천 개 중 가장 유망한 물질을 도출한다.
이어 시뮬레이션으로 안전성을 평가하고, 환자의 유전적 특성과 병력을 토대로 임상 대상자를 선별하고 용량을 최적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마지막으로 임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면서 필요한 경우 임상 시험을 환자 개개인에 맞춰 조정하는 데 기여한다.
이처럼 AI를 활용하면 신약 개발의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후보물질을 더 효과적으로 발굴할 수 있다. 임상시험 성공 가능성도 커진다.
‘21일간 2만 원 들여 후보물질 발굴’ 위력
약물의 화학적 구조와 생물학적 효과를 예측하는 자체 AI ‘GENTRL’을 구축한 미국의 인실리코 메디슨은 AI의 위력을 처음 입증했다. 2019년 바이오기업 제넨텍으로부터 섬유증의 원인 단백질 ‘DDR1’의 활성을 억제하는 신약을 의뢰받았는데, 단 21일 만에 3만 종의 후보군 가운데 6개의 유망 후보물질을 선별했다. 소요 비용은 15달러(약 2만 원)에 불과했다.
앞서 제넨텍은 DDR1 억제제 개발에 8년을 쏟아 붓고 수백만 달러를 투입했었다. 이 후보물질은 작년 초에 임상 2상을 통과했다.
최근 LG AI연구원은 신소재 및 신약 개발을 돕는 AI ‘엑사원 디스커버리’의 특허등록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수식이나 알고리즘에 초점을 맞춘 기존 AI 특허들과 달리 데이터 분석부터 실험 설계, 신물질 예측까지 전 과정이 보호 대상이라서 우회하기 어려운 ‘길목 특허’로 분류된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성능도 압도적이라는 평가다. 일례로 4천만 건 이상의 물질을 대상으로 합성한 결과물이 화장품에 필요한 물성을 갖췄는지, 합성이 용이한지, 유해물질 생성 가능성은 없는지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22개월 걸리던 검토를 하루 만에 완료했다.
국내서도 AI 신약 개발 기지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도 신약 개발에 AI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독자 AI ‘데이지’로 약 8억 종의 화합물 정보를 분석해 후보물질을 탐색 중이다. JW중외제약도 AI ‘제이웨이브’로 후보물질을 찾고 있다.
서울대 화학부 석차옥 교수가 창업한 갤럭스는 자사 AI로 ‘드노보’ 항체 9종을 설계했다. 드노보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던 단백질 구조로 개발한 신약을 의미한다. 글로벌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과 협업을 체결하며 사업성도 확인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윤태영 교수가 설립한 프로티나는 3개월 걸릴 항체 검증을 2주로 줄일 수 있는 AI ‘SPID’를 활용해 10개 후보물질 중 4개의 임상을 준비하고 있다. SPID는 미국 대형 제약사 애브비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의 효능을 20~100배 높이는 후보물질 검증도 3개월 만에 마쳤다.
‘신약 자율 공장’ 향하는 글로벌 제약사들
거대 글로벌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을 넘어 임상, 생산 등에도 AI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인간 면역세포 데이터를 학습한 AI로 환자 반응을 예측하고 후보물질 용량을 선택하는 임상을 도입했다.
화이자는 의약품 생산과 품질 관리에 AI를 쓰고 있는데, 앞서 코로나19 백신 개발기간을 10개월로 단축한 바 있다.
나아가 ‘신약 자율 공장’ 실현에도 성큼 다가갔다. 최근 미국 예일대 연구진은 베링거인겔하임과 화합물 생성 AI ‘모자이크’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후보물질 탐색과 설계, 검증, 화합물 합성까지 신약 개발의 모든 과정을 AI가 수행하는 게 핵심이다.
연구진은 약 100만 개의 방대한 화학반응 데이터를 모아 2천285개의 세부 전공으로 나누고 ‘모자이크’에 학습시켰다. 이를 통해 의약품부터 화장품 원료, 소재 등 35개 이상의 신규 화합물을 찾아냈고 성공률도 71%에 달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신약 개발의 ‘마지막 퍼즐’이 완성됐다고 평가한다. 후보물질 탐색과 실험 단계를 넘어, 시간과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화합물 합성까지 AI의 몫으로 넘길 수 있게 돼서다.
여기에 실물(피지컬) AI를 적용한 로봇까지 투입한다면 ‘신약 자율 공장’이 완성되는 셈이다.
출처: 월간마이더스 유한주 기자